Haia 2004. 1. 24. 17:24
설 연휴를 정신없이 시작했다가 정신없이 마감하고 있다..
그간.. 1년정도 되었나? 계속 아프시던.. 외할머니가 하직하셨다. 까치설날에..
내가 이성이라는 것을 가진 이래로.. 처음 맞이하는 죽음이라 그런 지.. 아직도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염을 하는 것을 보고.. 이미 오래 전에 기억 속에서 잊혀져버린 외할머니께 죄스러운 마음이 하염없이 들었다. 그리고 목놓아 우시는 엄마와 이모들.. 소리죽여 우시는 외삼촌들.. 그리고 사촌오빠들.. 아직도 영정 속에는 무시무시한 목소리와 몽둥이로 우리 모두에게 호통치시던 외할머니의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안중에서 4일장을 지내고.. 수원 납골당에 모시고.. 집에 와서 씻고..(과연 얼마만에 씻는 것인가.. 디려.. -_-) 드디어 정신을 차려가고 있다.. 아니.. 이제는 제대로 잠을 잘 때이다.
아직도 정신이 없는 듯하다..
이제 내가 세상에서.. 할머니라고 부를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촌수에 촌수를 따지고 들면 아직도 많이 있겠지만.. -_-
세배도 하지 못하고 설을 보냈다. 외할머니 가시는 길에 주신 선물은.. 바쁜 하루하루.. 쫓기는 생활 속에서 모든 식구들을 근.. 몇년 만에 만나게 해주신 게 아닐까..
처음으로 조카들에게 새뱃돈을 줬다.. 물론 세배는 없었고.. 조카들은 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했다. -_- 나도 어릴 때 그랬었다. 흐흐 그저 용돈을 주면 그만이고.. 넙죽절하고 세배랍시고.. 용돈 모아 무얼할까 궁리하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 엄마한테 꾸고.. 지갑을 긁어서 아이들에게 내가 이모라는 사실을.. 고모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나도 이젠 나이가 들긴 했나보다.. 다들 시집가라고 난리고.. 남자친구 없다하니 바보라고 하고 -0-
이번 장례를 치르면서 알게된 사실 하나는.. 조문객으로 상가에 가게 되면 즐겁게 놀아줘야한다는 것. 난 전혀 몰랐다. 왜 다들 몰려와서는 화투장을 들고 포커를 들고 놀음을 하는 지.. 후후.. 다 그런 뜻이 있더군..
3일동안 일을 한 건지 먹고 온 건 지 잘 구별이 안가지만.. 너무 피곤한 건 사실이다..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