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이아/일상다반사

태안을 다녀오다

Haia 2008. 1. 3. 10:51


태안에 다녀왔다.
TV 뉴스도 라디오 뉴스도 멀리하면서 사는 나.
엄마가 태안 앞바다 기름 얘기를 하실 때
슬쩍 흘려들어버리고 무지함을 무죄라 생각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스위티 까페에 애나가 태안가자고 써놓은 글을 보고 네이버 검색에 나섰다.

충격이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다니.
고작 몇명의 사람들의 부주의로 인해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생명체 그리고 말못하는 자연까지 아파하게 되는 건지..

눈물이 났다.
가슴이 아프구..
졸지에 생업을 잃은 그네들의 망연자실한 마음도 그렇거니와..
순식간에 생명이 위험해진 작은 생명체들 그리고 언제나 참기만 하는 위대한 자연..

그렇지만 내가 혼자 하치로쿠 끌고 간다해도 할 수 있는 건 너무나 미약했던게지..
돈도 돈이거니와..
여기저기 검색하다보니 네이버에 태안살리기 까페 발견.
삼사오오 지역마다 모여서 봉사활동을 가고 있기에..
시간이 맞을 때 와서 봐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드디어 발견.
29일 토요일. 수원시청자원봉사단에서 가는 버스에 자리가 남는다고 해서 바로 신청했다.
봉사의 손길은 많지만 조직적으로 데리고 가고 하는 기관이 미비하기에.. 봉사자리가 나서 신청하는 것도 무슨 입시마냥 치열(?)하다.
참고로 수원시청자원봉사단에서는 매일매일 봉사활동을 간다. 12월말까지 계획되어있었는데 이미 12월 초에 지원자가 마감되어 버렸었다.

--MORE--

29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시청에 도착.
7시 30분(역시 코리안 타임? 30분.. -_-) 출발.
9시 40분즈음.. 태안에 도착했다.
가는 길을 감상해주고 싶었는데 일찍 나서 나오다보니 잠자기 바쁘더라.. 왜케 졸립고 피곤한지 =ㅅ=
도착하니 찬바람이 쌩쌩 불더구나. 역시 바닷가는 바닷가니라..
방제복 받고 장갑이며 장화 받아서 채비를 다 갖추고 바닷가로 걸어갔다.
뉴스에서 보던 새까만 바다는 아니었지만 검은색의 바위들이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여기(이름이 격이 안난다 무슨 해수욕장)는 수원시 담당구역이라고 한다.
처음 왔을 때는 새까맸었는데 하루하루 오다보니 지금까지 왔다고 한다. 다행이지싶었다.

진뜩진뜩한 기름이 잔뜩 있고 냄새도 고약하겠거니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자세히 보지 않고는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바위들이 가득했다. 포크레인 두 대가 저 쪽에서 바위를 뒤엎고 있었다.
통성명한 두 사람과 함께 조를 이뤄서 자리를 잡았다.
바위 밑둥이와 돌 틈색들을 보니 까만 정체를 감추고 있더구나.. 코를 박고 손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돌들을 꺼내서 닦다보면 머리가 띵하고 등이 결렸다. 지금에도 이런데 기름으로 가득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간혹 눈발이 날렸지만 워낙 잘 챙겨입고 가서 그닥 춥지 않았다.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은 눈이 걱정되어서 우스꽝스러운 보호경을 갖고 갔지만 김이서려서 잘 쓰진 못했다.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기름내가 심한 곳은 코를 박지 않고 최대한 코를 멀리하고 돌을 닦았다. 기름을 흠뻑 먹은 돌과 그렇지 않은 돌과는 색이 천지차이였다. 그 둘을 비교해보지 않고서는 원래 이 돌이 까만색이겠거니.. 싶을 정도로. 아무리 닦아도 원래색일 것 같은 색이 나오지 않았다.

두시간정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배가 많이 고프고 힘들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을 먹으라고 부른다. ^^;;; 별로 한 것도 없는 미안한 마음에 따근한 국물을 눈발날리는 아래에서 정말 맛있게 먹어치웠다. 우리나라 대표 커피 맥심 커피믹스까지 마셔주고 다시 작업에 나섰다.

뽀송뽀송한 눈이 조용조용히 내리는 가운데 다들 열심히 일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닦아내는 돌들이 많진 않았다. 이렇게 해서 언제 이 많은 태안의 돌들을 다 닦아내나 싶어서 기운이 나지 않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다하니 어쩔 수 없지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와주어야 이 말못하고 아파하는 바다가 차츰 나아질 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앙씨가 준 헌옷가지와 내가 싸간 헌 수건가지 등등을 기름닦는데 썼는데.. 그 반도 채 못쓰고 오후 3시가 되었다. 이만 작업을 마치라는 소리를 듣고 해변으로 나오니 빵에 우유 그리고 컵라면까지 먹을 게 가득이다. 고마워하는 마음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4시간 작업으로 이렇게 많은 물품이 소요되는게 안타까웠지만 필요한건 사람 손이지 먹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양 팔이 미친듯이 아파왔다. 가는 길도 창밖으로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기절한 듯이 잠들었다. 팔이 아파서 계속 뒤척이면서 막히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수원에 도착하니 7시가 훌쩍 넘었다. 기운이 되면 춤추러 가려고 했었던 생각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팔이 욱신거려서 간신히 운전대를 잡고 집에 왔다. 그리고 시체놀이..

이런식이라면 어뜨케 언제 다 저 바다를 깨끗하게 돌려놓으려나.. 흙흙..
삼성이든 홍콩기름회사 사람이든 해경이든 다 미워지고 미워지고 미워지고 미워지고 그렇다.

우리 인간들의 실수.. 우리 인간들이 거둬들여야 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우리 인간들이 이 기름을 다 치워야 하는 것이다.

어느 까페에서 본 글귀가 떠오른다. 일상속에서 파묻혀서 자신의 도덕적 책임을 외면하고 살아간다는 사람들을 꾸짖던.. 내가 엑셀을 밟을 때마다 그 유조선의 뚫린 구멍으로 쏟아져 내리던 기름에 대한 책임이 내게 쏟아지는 것일테다.
비통하다는 말을 이럴 때 말고 언제 쓰나 싶다....